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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상식 31) 프로테스탄트와 영국 국교회세계사 상식 2023. 10. 9. 20:51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중세 유럽은 기독교 만능의 시대였다. 특히 로마 교황은 온 세계 교회와 신도를 밑에 두었다. 그 권력은 한 국가의 황제를 파문으로 굴복시킬 정도였다. 이런 절대적 권력과 부귀는 부패와 타락을 가져왔습니다. 그 대표적인 부패와 타락이 바로 면죄부 판매였습니다. 그러자 르네상스 후반인 16세기 초반부터 신성로마 제국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였던 루터는 1517년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여 종교 개혁의 횃불을 들었습니다. 그는 성서 중심주의를 주창하며 교황권을 부정했습니다. 황제 카를 5세는 루터를 신성로마 제국 의회로 소환하여 주장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으나, 그는 굽히지 않았습니다. 루터는 '구원은 믿음에 의해서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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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상식 30)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세계사 상식 2023. 9. 28. 16:46
르네상스의 의미 르네상스는 중세적 봉건적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정신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훗날 교황의 권위를 부정하고 성서와 신앙의 존엄을 확립하려는 종교 개혁운동이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르네상스는 프랑스어로 재생 또는 부흥을 의미한다. 르네상스의 특징은 휴머니즘이라 부리는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과 합리주의를 들 수 있다. 봉건사회와 금욕적인 크리스트교 정신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성을 중시하는 문화가 바로 르네상스이다. 문예 부흥이라고도 번역이 되는데 단순히 문예의 부흥만이 아니라 사회의 개혁이요, 근대의 시작이었다. 르네상스의 시작 14세기 로마와 그리스 등의 고전 문화적 자산이 풍부했던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처음 일어난 것은 비잔틴 제국의 멸망으로 다수의 학자가 이탈리아로 이주해 온 이유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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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상식 29) 크리스트교 중심의 중세 문화세계사 상식 2023. 9. 27. 19:20
유럽 중세 문화는 융합의 문화 절대적으로 크리스트교 문화의 지배를 받았던 중세 서유럽 문화는 크리스트교를 중심으로 한 로마 문화와 게르만 문화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서 간의 오랜 전쟁을 통해 이슬람 비잔틴 문화의 영향도 받았다. 특히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이베리아 반도의 코르도바에서는 유럽 각지에서 온 유학생들이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과 아라비아의 고도의 수학과 천문학을 배웠다. 유럽의 대학과 학문 1150년경 이탈리아의 볼로냐에 유럽 최초의 대학인 볼로냐 대학이 생겼다. 주로 법학과 여러 학문을 가르쳤으며, 그중에는 아라비아의 의학을 가르친 살레르노 대학도 있었다. 이 외에도 신학을 가르친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과 프랑스의 파리 대학이 유명하다. 공용어는 라틴어였고, 학문 중에서는 신학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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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상식 28) 십자군의 탄생세계사 상식 2023. 9. 26. 18:58
십자군의 형성 배경 11세기 무렵, 서유럽의 국가들 사이에서는 세력 확대의 기운이 높아지고 있었다. 십자군 전쟁의 배경에는 동방 무역의 확대를 위한 이탈리아 각 도시의 동지중해 진출과 크리스트교의 국토 회복 운동의 고조, 더불어 유럽 사회 전체의 안정 상태가 깔려 있었다. 한편, 7세기 이후 크리스트교의 성지 예루살렘이 이슬람교도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성지 회복의 움직임도 고조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셀주크 황조가 아나톨리아를 침략했다. 수도 콘스탄티노플 함락의 위기를 느낀 비잔틴 황제 알렉시우스 1세는 로마 교황 우르바노 2세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우르바노 2세는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비잔틴 제국 중심의 동방 종교회와 서유럽 중심의 로마 가톨릭 교회의 통일을 목표로 성지 회복을 호소했고 결국 십자군이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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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상식 27) 비잔틴 제국과 교회의 분열세계사 상식 2023. 9. 25. 14:28
비잔틴 제국의 성립 동로마 제국은 기원전 8세기에서 200년 동안 그리스의 식민지였던 비잔티움에서 이름을 따와 비잔틴 제국이라고 불렀다. 비잔티움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옛 이름이다. 비잔틴 제국의 전성기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다. 그는 마케도니아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36세가 되던 해 그를 키워준 숙부가 황제로 추대된다. 527년, 그의 숙부가 죽다 유스티니아누스는 황제에 오른다. 그는 6세기에 게르만 민족의 동고트 왕국 그리고 반달 왕국을 멸망시키고 지중해 연안을 제패했다. 또한 법학자 트리보니아누스에게 "로마법 대전"을 편찬케 하고, 국내 통일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의 정치는 탄압적이었다. 국민에게 무거운 세금을 물렸고 잦은 전쟁으로 인한 징병 제도 등으로 민중 반란이 일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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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상식 26) 중세유럽의 봉건제도세계사 상식 2023. 9. 24. 18:26
유럽 봉건제도의 성립 중세 유럽을 지탱해 온 이념은 봉건주의였습니다. 받은 토지를 매개로 주종 관계를 형성하는 유럽의 봉건제는 왕과 신하의 개인적인 예약에 기초했습니다. 혈연 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던 중국의 봉건제도와는 달랐습니다. 이 주종 관계의 기원은 게르만족의 종사제와 왕이 신하에게 토지를 주어 보호하면 신하는 군사적인 봉사를 하는 로마 말기의 은대지 제도에 있습니다. 이러한 주종 관계는 카롤링거 왕조 프랑크 왕국 시대부터 세습의 형태를 띠었습니다. 나아가 인구가 많아지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국왕에서 제후로, 제후에서 다시 기사로, 다시 농민으로 이어지는 피라미드 형태의 계층사회를 형성하는 통치 이념이 되기도 했습니다. 봉건 사회의 인적 구성을 비유적으로 '기도하는 사람, 싸우는 사람, 일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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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상식 25) 게르만족세계사 상식 2023. 9. 23. 17:54
고대 게르만족 발트 해 연안에 사는 게르만족은 비옥한 토지와 환경을 찾아 드넓은 초원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기원 전후부터 각 부족의 통합과 재편을 추진하여, 수십 개의 부족 국가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 부족 국가에서 왕과 수장은 군사와 종교상의 지도자였지만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것은 아니었습니다. 최고 결정 기관은 자유민인 성인 남자가 참석하는 민회였습니다. 또 대토지를 소유한 귀족과 고용 관계를 맺어 충성을 맹세하는 종사제가 있었습니다. 기원전 1세기 무렵 게르만인은 라인 강 동쪽에 진출하여 로마 제국과 인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3세기에는 도나우 강 하류 지역까지 퍼져, 인구 증가와 토지 부족으로 인해 용병이나 소작인으로서 로마 제국 내로 이주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게르만족의 건국 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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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상식 24) 티무르 제국과 오스만 제국세계사 상식 2023. 9. 22. 21:06
몽골 제국의 재건을 꾀한 티무르 1370년, 칭기즈 칸의 후손을 자처한 차가타이한국의 티무르는 1366년, 처남 후사인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서차가타이한국의 지배권을 장악했습니다. 그 후 테구르는 후사인마저 몰아낸 후 자신의 왕조를 확립했습니다. 그 후 구이란,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인 사마르칸트를 도읍으로 삼고, 이란 지역의 일한국을 정복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슬람 세계는 중앙아시아로 확산됐습니다. 그는 이슬람교에 기반을 둔 몽골제국의 재건에 힘써 차가타이한국이 전국을 통일하게 되었는데, 분열되어 있던 일한국을 병합하고 킵카츠한국의 일부도 손에 넣었습니다. 1392년에는 바그다드를 점령했으며 또한, 인도 북부를 지배하에 두어 맘루크 왕조로부터 시리아를 빼앗았습니다. 1402년에는 서아시아의 패권과 이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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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상식 23) 이슬람제국의 500년세계사 상식 2023. 9. 21. 19:05
몽골/이집트의 이슬람화 1258년, 몽골 제국의 칭기즈 칸의 손자 훌라구는 국내외로 어려워진 이슬람 제국 아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를 점령했습니다. 이로써 500년 역사의 이슬람 종주국은 멸망하고, 훌라구는 바그다드에 일한국을 세우고 이란을 지배하에 두었습니다. 일한국은 13세기 말, 가잔 칸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일한국은 이슬람교를 국교로 삼았는데 훗날 이슬람 제국은 멸망했지만 이슬람교는 몽골족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색목인을 우대했던 몽골족은 이슬람계 역사가인 라시드 앗딘을 재상 자리에 앉히고 학예를 장려했습니다. 이러한 일한국의 통치 방식 덕에 이란과 이슬람 문화가 꽃을 피웠습니다. 앗딘은 페르시아어로 세계사 "집사"를 편찬했는데, 특히 "몽골집사"는 사료적 가치가 높은 걸작으로 평가받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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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상식 22) 아라비아인 제일주의세계사 상식 2023. 9. 19. 18:16
아랍제국 - 정통 칼리프 시대 알라의 사도의 대리자란 뜻의 칼리프는 무함마드 사후 혼란이 일어나자 선거를 통해 선출했습니다. 초대 칼리프인 아부바르크는 페르시아 군대를 격파했고, 제2대 칼리프인 우마르는 예루살렘을 점령했으며,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빼앗고 이집트까지 점령했습니다. 제3대 칼리프인 오스만은 친척을 중용한 실수로 암살당하지만 651년에 1200년 역사의 사산조 페르시아를 멸망시킵니다. 또한 646년에 알라의 계시인 이슬람의 경전 "코란"이 완성됩니다. 그 뒤를 이어 제4대 칼리프인 알리가 취임했습니다. 그러나 알리 칼리프 시대에 칼리프 선서 문제로 분쟁이 발생해 옴미아드가의 무아위야는 무력으로 칼리프 자리를 차지한 후세습 칼리프 제도를 세웠습니다. 여기서 초대 칼리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