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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사 상식 48) 식민지 획득을 위한 열강들의 싸움
    세계사 상식 2024. 5. 4.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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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주의 열강의 대립

       19세기 말, 철강과 화학 등의 중공업은 구미 국가들의 산업 중심이 되었습니다. 각 기업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생산의 집중화와 독점화를 도모하게 되었고, 동종업계 기업들이 가격 협정을 하거나 단일 경영권을 묶는 등 연합체를 조직했습니다. 그러면서 은행 역시 기업에 대한 융자를 통해 거대화 되었습니다. 산업 자본과 은행 자본을 통합한 금융 자본이 탄생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소수의 대자본가가 기업을 지배하는 독점 자본주의가 만들어 졌습니다. 

       그렇게 중공업 중심의 구미 각국들은 급속한 생산력의 발전을 이루었으나 국민들의 구매력을 따라가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상품과 과잉 자본의 수출시장을 찾아 국외로 진출하여 식민지 획득 경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이 단계가 바로 제국주의입니다. 처음 중공업 부분에서 영국이 주도하던 시대는 끝나고 독일과 아메리카가 영국을 제치고 비약하면서 열강 각국의 긴장과 대립이 깊어져 갔습니다.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억압하고 강요하면 무엇이든 터지기 마련입니다. 독점 자본주의는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서 소기업과 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요했습니다. 결국 노동 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운동과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지적하는 사회주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1864년에 이르러서야 노동 조건의 개선 등을 요구하며 국제적 노동운동 조직인 제1인터내셔널이 런던에서 설립되었으나 10년만에 해산되었습니다. 그 후 1889년에 구미 19개국의 대표가 파리에 모여 제2인터내셔널을 설립하고 마르크스주의를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각국 대표가 자국 정부를 지지하여 붕괴하고 말았습니다. 

     

    대영제국

       1874년, 디즈레일리 내각 이후 제국주의를 주장하는 보수당 아래서 영국은 대외 진출을 추진하게 됩니다. 그 결과 영국은 광대한 식민지를 소유하는 대제국이 됩니다. 영국은 다른 열강과 대립하면서 1997년에 식민지 회의를 열어 본국과 식민지의 관계를 강화했습니다. 영국의 야욕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1899년, 영국은 금광과 다이아몬드 광산을 차지하기 위해 남아프리카와 오렌지 자유국에 선전 포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총 인구 55만 명에 군대라고는 8만에 불과한 남아프리카와 오렌지 자유국에 50만 명에 이르는 대군을 증강시켜 출병시킨 것입니다. 금광과 다이아몬드 광산이 세계 최대 규모였던 두 나라를 식민지화할 경우 국제 경제의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습니다. 영국은 그렇게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아시아는 물론이고 아프리카까지 식민지로 삼고자 무모할 정도로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제3공화정 체제의 프랑스

       프로이센 중심의 독일 북부 연방과 작센, 바이에른 등이 중심인 남부 독일로 나뉘어 있던 독일이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가 즉위하면서 통일된 독일 제국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런데 남부 독일 연방들은 프로이센을 싫어했습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 수상이 선택한 방법이 프랑스와의 전쟁이었습니다. 프랑스는 파죽지세로 몰려오는 프로이센 군대에게 한 달만에 메스 요새가 함락되었고, 당시 프랑스의 황제인 나폴레옹 3세가 포로로 잡혔습니다. 

       결국 프랑스는 나폴레옹 제정을 폐지하고 제3공화정의 임시정부를 수립했습니다. 이 정부가 프로이센과 굴욕적인 강화 조약을 맺자, 대자본가 위주의 정부 구성에 불만이던 파리 민중이 반정부/반프로이센 투쟁을 선포했습니다. 프랑스는 이렇게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었습니다. 또 독일은 비스마르크의 외교에 의해 유럽에서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군부가 대두하여 배외주의를 부추겼습니다. 결국 군부는 물러났으나 사회주의 세력이 등장하여 공화파와 결탁하고, 식민지 정책을 지지했습니다. 

     

    독일의 해외 발전 정책

       통일 독일의 실질적인 주역인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는 보호 관세 정책을 취하여 외국 제품을 배제했습니다. 그러자 대자본가의 힘이 강해졌습니다. 한편 노동운동도 확대되어 1875년에 독일 사회주의 노동자당이 결성됐습니다. 이후 사회주의자들은 빌헬름 1세의 암살을 두 차례나 시도했습니다. 비스마르크는 1878년에 제정된 '사회주의자 탄압법'을 통해 이들을 진압하고, 또 외교 면에서는 프랑스를 고립시켰습니다. 나아가 러시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와 각종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독일 통일의 주역이었던 비스마르크는 황제 빌헬름 2세와 대립하여 1890년 사임하고 말았습니다. 12년 후에 사회주의자 탄압법은 해체되었고,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사회민주당이 마르크스주의 강령을 채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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