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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사 상식 42) 아메리카 합중국 - 1
    세계사 상식 2023. 10. 20.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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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으로부터의 독립하는 아메리카 합중국

    먼로주의와 독립 외교

       아메리카는 독립 후 3대 대통령 제퍼슨 시대에 연방 제도하에서 주를 중심으로 한 지방 분권을 주장하는 주권주의를 확립했습니다. 이후 1812년, 영국이 해상을 봉쇄하고 인디언과 동맹을 맺자 미국은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미국은 이 전쟁을 통해 영국과의 무역을 중지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미국의 공장제도가 발전했습니다. 이후 미국의 5대 대통령인 먼로가 '먼로주의'를 발포하여 미국은 유럽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습니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각국에 대한 유럽의 개입을 배제할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서부 개척의 움직임

       독립 후 미국은 적극적으로 서부 개척에 나서 영토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1803년에 는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에나를 사들였고 1848년에는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골드러시가 일어나 인구가 급증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서부 개발을 위해 서부의 토지를 싸게 분배했습니다. 그러자 미국 동부의 빈민과 유럽에서 온 신이주민들이 개척에 나섰습니다. 서부에 농민이 정착하자 북부에서는 농기구와 비료, 곡물을 판매하면서 서부와 북부의 관계가 강화되었습니다. 그 후 서부에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자치권을 인정하는 도시들이 속속 새로 생겨났습니다. 성인 남자 5천 명이 자치권을 인정했고, 자유민이 6만 명으로 늘어나면 주헌법을 제정, 다른 주와 평등하게 연방 정부에 가입할 수 있게 체제가 갖추어져 나갔습니다. 

     

    아메리카의 민주주의

       1829년, 잭슨이 아메리카합중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는 남자 보통 선거제의 실현을 촉진하고 당 대회를 통한 대통령 후보자의 선출, 공립학교의 보급 등 여러 민주적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이를 잭슨 민주주의라 합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이 된 이듬해인 1930년, 인디언의 강제 이주 및 노예제 강화 등을 추진했습니다. 잭슨 대통령은 민주주의 싹을 틔웠지만 인디언과 노예들에 대한 차별은 한층 더 강화시켰습니다. 이에 민주당인 그를 견제해 반 잭슨파가 훗날 공화당이 되는 휘그당을 세웠습니다. 

     

    남북 전쟁

       아메리카의 남부지역은 영국과의 연대가 강했습니다. 영국의 산업혁명이 진전되면서 면화 수요가 증가하자 연대가 강했던 아메리카 남부 지역의 면화 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영국의 면화 수요 증가는 흑인 노예 노동력이 기반인 대농장의 발전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러자 남부는 면화 수출의 증대를 지향하는 자유무역과 주의 자치권을 강화하는 주권주의와 서부에 대한 노예제 확대를 주장했습니다. 반명, 북부의 사정은 달랐습니다. 자본주의의 발전과 국내 시장의 확대를 위해 보호 무역과 중앙 정권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한 연방주의와 노동력 확보를 위한 노예제 폐지를 요구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서부 지역은 북부의 산업 자본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서부 개척의 진전으로 형성된 새로운 주에 노예제를 인정할 것인지 여부를 둘러싸고 남북의 대립이 격화되었습니다. 

       남북 간의 대립은 1860년대에 이르러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켄터키 출신으로 16대 대통령이 된 링컨은 1861년 노예제 확대 중지와 강력한 연방제를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당시 남부의 사우스캐롤라이나, 앨라배마, 플로리다, 조지아, 루이지애나, 미시시피의 6개 주는 아메리카합중국에서 이탈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남부는 지주 출신들과 군대 요직을 차지했던 경력 장교들이 많았던 반면에 북부는 산업 부르주아가 많았습니다. 남과 북의 대립은 사실상 이들의 대립이기도 했습니다. 남부는 이어 제퍼슨 데이비스를 대통령으로 하는 아메리카 남부 연합을 결성하는데, 결국 남북 전쟁으로 발전했습니다. 링컨은 5년간 공유지에 정착하면 160에이커의 토지를 무상으로 주는 홈스테드법을 제정하면서 서부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급기야 1863년 1월 1일을 기해 남부의 노예들은 영원히 자유의 몸이 될 것이라며 노예 해방 선언을 발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남부에서 탈출한 노예들이 북군의 의용군으로 가담하면서 북군의 전세가 강화되었습니다. 남북 간의 전쟁은 격화되었지만 게티즈버그의 격전 후, 남부의 수도 리치몬드가 함락되면서 북부의 승리로 합중국은 다시 통일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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