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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사 상식 44) 식민지 아시아
    세계사 상식 2023. 10. 22.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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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만 제국

    침략의 빌미가 된 아시아 제국들의 동요

       18세기 초반까지 유럽 대륙과 아시아 대륙이 만나는 접점이 오스만 제국, 16세기 중반에 들어서서 인도를 통일한 무국 제국 그리고 동아시아의 청나라 등은 비교적 안정된 질서를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8세기 중반 이후 점차 동서 간의 교역이 확대되면서 이들 나라의 경제가 변화했고, 내부 반란 등으로 인해 혼란이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가 되자 유럽 각국은 그 틈을 타 아시아를 침략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시아를 변화시킨 무역

       여러 교육 루트의 발달은 유럽은 물론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16세기 무렵 스페인은 아메리카에 모직물을 제공하고 은을 받아서 중국이나 인도 등에서 아시아의 향료/비단/도자기 등을 구입했습니다. 17~18세기에는 네덜란드와 영국이 서구의 모직물/화기를 아프리카에 제공하는 대가로 흑인 노예를 받아 아메리카로 데려갔습니다. 이들은 아메리카로부터 설탕/담배/은을 들여오는 형태의 회전 무역을 실시했습니다. 영국의 경우 19세기에 이르러 본국의 면 제품을 인도로 보냈고, 인도의 아편을 중국으로, 중국의 차를 본국으로 가져왔습니다. 이런 무역이 아시아 각국의 체제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산업혁명의 영향

       산업혁명이 진전됨에 따라, 서구 각국은 아시아를 원자재 공급처 및 판매시장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아시아를 지배하는 방법도 광범위한 지역에 면화/고무 등의 공업 원료와 고구마, 커피 등의 상품 작물 생산을 강요하는 '면의 지배' 형태로 변화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아시아의 경제/사회는 크게 바뀌었습니다. 게다가 서구 각국이 아시아로 진출하여경제적인 대립이 격화됐습니다. 그러다보니 서구 각국이 안전한 투자 자본을 확보하기 위해 아시아의 식민지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개혁

       지중해 연안을 평정하면서 가장 강성한 유럽 국가 중의 하나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오스만 제국은 16세기 후반 서유럽의 수호자였던 스페인과의 해전에서 참패, 17세기 후반부터는 오스트리아 및 러시아와의 전쟁에 패배하여 유럽 영토의 대부분을 잃었습니다. 또한 19세기 초반의 영국 독립 전쟁와 이집트-투르크 전쟁으로 국력을 소모했습니다. 19세기 중반에는 제31대 황제에 의해 새로운 헌장이 발포되어 서구와 개혁인 탄지마트를 시행했지만, 개혁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제34대에 이르러서야 아시아 최초의 근대 헌법인 '미드하트 헌법'이 제정되었고, 다음 해에는 의회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이 해에 러시아-투르크 전쟁이 일어나 헌법이 정지되고 황제의 전제 정치가 부활했습니다. 게다가 러시아-투르크 전쟁에서 패배하여 발칸 반도를 잃었습니다. 이후 영국 등의 침략을 받아, 19세기 말에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아라비아반도와 이집트

       18세기 후반, 아라비아반도에서는 서구 열강의 진출에 대항하여 코란의 준수와 금욕주의 등을 주창하는 복고주의적인 이슬람 개혁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운동은 그 후 호족인 사우드가와 제휴하여 와하브 왕국을 건국하면서, 아랍 민족주의의 선구가 됐습니다. 

       이집트에서는 나폴레옹의 원정 때 맞서 싸운 '무하마드 알리'가 실권을 쥐고 구지배층을 일소한 뒤 공장, 군사, 교육에서 근대화를 추진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에 걸친 오스만 제국과의 전투를 거쳐 독립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열강의 간섭을 받아, 수에즈 운하의 주식을 40%나 보유하고 있던 이집트는 1875년에 주식을 매수한 영국에 종속됐습니다. 

     

    이란의 변동

       800년 동안 이민족의 지배를 받아왔던 이란은 16세기에 들어서서 사파비 왕조의 등장으로 민족 정권이 유지되었습니다. 17세기 초반 사파비 왕조는 그동안 이란을 괴롭혀왔던 오스만 투르크를 몰아내고 일류 국가로 성장했습니다. 당시 수도인 이스파한에는 60만이 넘는 인구가 살았는데 세계 각국의 사절들과 상인들이 몰려들어 세계의 축소만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17세기 후반에 영국이 아라비아반도 동부의 바스라에 동인도회사를 건설하자 이란을 경유한 무역이 쇠퇴하고 그와 동시에 사파비 왕조도 쇠퇴했습니다. 사파비 왕조가 멸망한 후, 1736년에 투르크계 아프샤르족의 나디르샤가 아프샤르 왕조를 건국합니다. 그 후 투르크계 아가무하마드가 이란을 통일하고, 1796년에 테헤란을 수도로 삼아 카자르 왕조를 세웠습니다. 이 왕조는 사파비 왕조가 몰아냈던 오스만 제국과 다시 교역을 강화했습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이란은 러시아의 남하 정책의 표적이 되었고, 러시아와의 전쟁에 패배하여 1828년, 불평등조약을 맺었습니다. 또한, 러시아에 아르메니아를 할양하고, 러시아인의 치외법권을 인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후, 다른 열강도 같은 권리를 요구하여 서구 각국의 이란 침공이 진행됐습니다. 이렇게 사회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민간에는 시아파의 신비주의가 확산되었습니다. 1848년 이후 바브교도는 봉건적 체제와 외국 세력에 대한 저항을 주장하며 각지에서 봉기했으나, 모두 진압되어 실패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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